[판례 해설]
본 사안에서 관리비 체납자들은 소방안전상의 이유로 입주를 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 기간 동안의 관리비 등은 지급할 수 없다고 하면서 관리비 지급을 거부하였다. 이에 대상판결에서는 그와 같은 안전상의 이유로 관리비 납부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위험이 추상적 위험 정도가 아닌 구체적 위험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가능한바, 당시 소방안전법등에 의하여 지적받아 시정조치를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시기 동안에 다른 구분소유자들이 입주하여 영업을 하였던 점 등을 고려한다면 관리비 납부를 거부할 정도의 구체적 위험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관리비 납부의무를 인정하였다.
사실 관리비를 연체하는 구분소유자들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대체로 관리단에서 관리를 잘못하였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러나 관리비는 집합건물을 관리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납부되어야 하는 금원이고, 한명의 구분소유자가 관리비 납부를 거부한다면 필연적으로 그 부분만큼 다른 구분소유자가 책임을 부담하게 되므로 법원에서는 가급적 관리비 납부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하여 엄격하게 해석하곤 한다.
결국 대상판결에서도 법원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되어 관리비 납부의무를 인정하였는바 관리비 자체가 집합건물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지극히 타당한 판례라고 보인다.
[피고들 주장의 요지]
이 사건 건물 중 피고들이 구분소유하고 있는 건물 부분(이하 ‘이 사건 판매시설’이라 한다)은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2015. 1. 20. 법률 제13062호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소방시설법’이라 한다)에 따라 위 법률에서 정하는 소방시설을 설치 또는 유지·관리해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이다. 하지만 원고는 이 사건 건물 중 3, 4층 개구부를 진열장으로 막아 소방시설법 시행령 제2조 제1호에서 규정하는 ‘무창층(無窓層)’이 되었음에도 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피고들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입게 될 인적·물적 피해에 대한 불안으로 이 사건 판매시설에 입주할 수 없게 되었다. 피고들은 원고에게 소방시설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원고는 이를 거부했다. 이는 관리주체인 원고의 불법적인 사용방해에 해당하고, 피고들은 이 때문에 이 사건 판매시설을 사용·수익하지 못했으므로 관리비를 낼 의무가 없다.
[법원 판단]
1)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 주체임을 천명하고 있다. 또한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각 헌법 규정에 따르면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으로서 모든 국민은 위 규정에 따라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2) 헌법상의 기본권은 제1차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을 공권력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권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헌법의 기본적인 결단인 객관적인 가치질서를 구체화한 것으로서, 사법(私法)을 포함한 모든 법 영역에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사인간의 사적인 법률관계도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에 적합하게 규율되어야 한다(대법원 2010. 4. 22. 선고 2008다3828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다만 기본권 규정은 그 성질상 사법관계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사법상의 일반원칙을 규정한 민법 제2조, 제103조, 제750조, 제751조 등의 내용을 형성하고 그 해석 기준이 되어 간접적으로 사법관계에 효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방안전상의 위험 때문에 피고들의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영업)할 권리가 침해된다는 이유로 관리비의 지급을 거절한다는 피고들의 주장도 충분히 경청할만하다. 그리고 안전한 환경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유해요소가 점점 증가하고 있고, 안전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증대되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소방안전상의 위험을 이유로 관리비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확인할 현실적인 필요도 있다.
3) 하지만 집합건물법 제10조 제1항은 공용부분은 구분소유자 전원의 공유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제11조는 각 공유자는 공용부분을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제17조는 각 공유자는 규약에 달리 정한 바가 없으면 그 지분의 비율에 따라 공용부분의 관리비용과 그 밖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구분소유자가 공용부분을 공유하면서 관리비용을 부담하는 이상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가 소방안전상의 위험을 이유로 관리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다른 구분소유자에게 그 부담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구분소유자의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이 소방안전상의 위험을 이유로 관리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다른 구분소유자의 권리와 충돌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제연설비 등 소방안전 상의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소방 설비를 설치할 수 있는 비용은 관리비 또는 관리비와 함께 부과되는 장기수선충당금에서 나오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인 점, 이 사건 규약 제6조 제6호에 따르면 구분소유자는 건물 유지관리에 필요한 관리비 등의 부담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 점을 함께 고려해보면 소방안전상의 위험을 이유로 관리비의 지급을 거절하기 위해서는 화재가 발생할 경우 구분소유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해할 것이라는 추상적인 위험이나 그에 대한 우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위험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구분소유자가 관리비를 지급하더라도 관리단 등 관리주체가 소방시설의 설치를 거부하는 등의 이유로 소방안전상의 위험이 제거되지 않으리라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을 근거로 이 사건을 살펴본다. 앞서 제시한 증거들에 을 제3호증의 1 내지 9, 을 제4호증의 1 내지 12의 각 기재 및 영상,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사정들은 다음과 같다.
① 이 사건 건물의 소방시설에 대한 언론보도가 있은 후 제주소방서는 소방시설법 제4조에 근거해서 소방특별조사를 했고, 그 결과 10가지의 지적사항에 대한 조치명령이 있었음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다. 그리고 조치 사항 중에는 피고들이 소방안전상의 위험요소로 가장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이 사건 건물 3층과 4층의 무창층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② 제주소방서는 현장확인을 통해 위 조치명령에 대한 보완조치가 모두 완료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제주소방서는 이 사건 건물 3층과 4층이 무창층인지와 관련하여 현장확인을 통해 각 층별 창문의 위치와 면적을 개별적으로 조사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창호 부분을 제외하고 각 층별 바닥면적과 개구부의 면적을 산정한 결과 3층과 4층이 소방시설법상의 기준에 적합하다고 판정했다.
제주소방서가 위와 같은 판단에 이르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제주소방서는 이 사건 건물 3층과 4층에 있는 창문 등 개구부를 모두 조사해서 그 중 소방시설법 시행령 제2조 제1호 각 목에서 정하는 요건을 모두 갖춘 개구부만을 기준으로 그 면적을 산정하고, 그 면적이 바닥면적의 30분의 1 이하인지 여부를 판단했다. 그리고 제주소방서는 개구부 면적 산정에서 제외한 창호 부분의 위치와 면적을 특정하고, 배제한 이유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밖에 제주소방서의 조사 결과가 위법하다거나 자의가 개입되어 있다고 볼만한 아무런 사정이 없다.
③ 피고들은 건물 외벽 창문을 매장의 진열장이 막고 있어 사실상 개구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제주소방서는 3층 2개 매장 진열장 내 가장 작은 개구부를 조사한 결과 소방시설법 시행령 제2조 제1호 각 목에서 정하는 요건을 모두 갖춘 것으로 판단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개구부 면적 산정에 있어서도 진열장의 개방 부분만을 포함함으로써 전체 외벽 유리 면적이 전부 개구부 면적에 포함되는 불합리함도 피하고 있다.
④ 이에 대하여 피고들은 제주소방서의 위 조사 결과는 매장과 연결된 주차장 창문도 개구부에 포함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데, 이 사건 건물은 매장과 주차장이 분리되어 있고, 화재 발생시 방화문이 닫히고 방화셔터가 내려와 연기가 주차장이나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주차장에 있는 개구부는 그 기능을 할 수 없으므로 주차장에 있는 창문을 개구부에 포함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위 조사 결과는 매장 부분의 면적에 주차장의 바닥면적을 포함해서 전체 바닥면적을 산정한 다음 매장과 주차장의 개구부 면적을 산정해서 그 비율을 계산한 것으로서 소방시설법 시행령이 정하는 무창층의 평가방법에 위반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매장부분의 바닥면적을 전체 바닥면적으로 보고, 여기에 매장 부분의 개구부 면적에 주차장 부분의 개구부 면적을 포함한 면적을 개구부 면적으로 보았다면 피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위법한 산정방법으로 볼 수 있으나 전체 바닥면적 대비 전체 개구부 면적의 비율을 산정한 이상 특별히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들의 위 주장은 주차장 부분의 바닥면적과 개구부 면적을 제외하고, 오로지 매장 부분만의 바닥면적과 개구부 면적만을 기준으로 무창층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소방시설법 시행령에는 무창층인지를 평가함에 있어 주차장 부분을 제외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또한 매장과 주차장의 화재 위험에 차이가 있다고 볼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상 매장과 주차장을 분리해서 평가할 만한 특별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주차장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할 위험도 있기 때문에 매장 부분과 주차장 부분을 구별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주차장 부분을 포함해서 무창층인지 여부를 평가한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⑤ 설령 피고들의 주장과 같이 주차장 부분을 제외할 소방안전상의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소방시설법 등 관계법령에 이를 제외하도록 하는 아무런 근거가 없음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다. 나아가 이를 입법상의 미비라고 본다고 하더라도(제주소방서는 위 조치결과 안전지도담당으로 하여금 매장 부분 바닥면적 1/30 이상의 개구부를 매장 부분에 확보하도록 하는 등 소방방재청에 법령 개정의견을 제시하도록 건의하게 했음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다), 현재 상황에서 그 위험이 구체화되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
⑥ 나아가 피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 사건 건물이 무창층에 관한 소방시설법 및 그 시행령 규정에 위반된다고 하더라도, 소방시설법은 화재와 재난·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소방시설 등의 설치·유지 및 소방대상물의 안전관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공공의 안전과 복리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로서 행정법규에 해당한다. 행정법규에 위반하는 경우 그에 대한 행정상의 제재가 가해지는 것은 별도로 하고, 행정법규 위반을 이유로 피고들이 관리비를 거절할 수 있는 사법상의 권리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⑦ 피고들은 소방안전상의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 사건 건물에 입점하여 영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고들은 이 사건 건물 중 많은 수의 구분소유 부분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 B는 이 사건 소송 계속 중인 2015년 3월경부터 6월경까지도 상당수의 구분 소유부분을 추가로 취득한 것으로 확인된다(피고 B는 이 사건 소송 계속 중 3층 320호, 329호, 333호, 345호, 4층 402호, 429-2호, 430호, 432호, 440호, 442호, 5층 512호, 516-7호, 516-11호의 소유권을 취득했다). 피고들의 이러한 태도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이 이 사건 건물에 소방안전상의 위험이 있어 영업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이 들고, 설령 그러한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험이 현재 객관적이고 구체화된 위험인지도 의문이다.
⑧ 또한 피고들이 요구하는 소방시설이 설치되거나, 무창층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관리비의 납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피고들은 이 사건 소송에서 소방시설법상의 안전기준 위반을 지적하고 있을 뿐, 관리비를 납부한 다음 소방시설을 설치하거나 무창층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있다(이 법원은 피고들에게 필요한 제연시설의 목록과 소방시설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방안을 제시하고, 일단 관리비를 납부한 다음 최우선적으로 제연시설이나 소방시설을 설치하는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피고들은 위와 같은 목록이나 필요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⑨ 한편 원고 관리단의 2014년 임시총회 회의록에 따르면 이 사건 건물의 구분소유자들은 피고들이 지적하는 이 사건 건물의 소방안전상의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연설비를 설치하거나 개구부를 막는 물건을 치우거나 창호를 개방하는 등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이 관리비를 납부하면 필요한 제연설비를 설치하거나 개구부를 소방시설기준에 맞게 정비하는 등의 방법으로 소방안전상의 위험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안전하게 생활할 권리는 우리 헌법에서 도출되는 중요한 기본권이고, 우리 사회에 있어 안전이라는 문제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는 하나, 피고들이 주장하는 위와 같은 사유들만으로는 이 사건 건물의 구조나 소방시설 등의 현황에 비추어 소방안전상의 위험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확인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피고들이 관리비를 지급하더라도 소방안전상의 위험이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피고들은 원고가 이 사건 건물을 소방안전기준에 위반한 상태로 방치한 것이 불법적인 사용방해라고 주장하나, 위와 같은 이유에서 원고의 행위를 불법적인 사용방해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도 지적해둔다(대법원 2006. 6. 29. 선고 2004다3598 판결 참조)].